2026-08-14 · 남주완 (수석연구원)

돌봄과 여가시간 배분은 왜 시간이 아니라 성별에서 갈리나: 맞벌이 여성 돌봄 11.69시간과 재량시간 빈곤 64.7%의 여가복지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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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여가시간 배분은 왜 시간이 아니라 성별에서 갈리나

핵심부터 말하면, 여가 격차의 진짜 갈림길은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그 시간을 누가 돌봄에 먼저 내주느냐에 있습니다.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서 국민 1인의 하루 여가시간은 5시간 8분으로 5년 전보다 늘었지만, 맞벌이 가구 안에서 남편의 여가시간은 아내보다 하루 30분 더 많았습니다. 미취학 자녀를 둔 맞벌이 여성의 재량시간 빈곤율은 64.7%, 여가·사회관계시간 빈곤율은 50.5%에 이릅니다. 여가시간을 통째로 늘리는 정책만으로는 이 배분의 기울기를 바로잡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목차

아침 6시, 여가가 사라지는 자리

한 맞벌이 가정의 평일 아침을 그대로 따라가 보면 여가시간이 어디서 증발하는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오전 6시, 아이가 깨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등원 가방을 챙깁니다. 아버지도 같은 시간에 출근을 준비하지만, 생활시간조사가 시간대별로 쪼갠 자료를 보면 오전 6시부터 8시 사이 아동을 실제로 돌보는 비율은 어머니가 60~80%에 몰려 있고, 같은 시간대 아버지는 10%대에 그쳤습니다.

퇴근 이후도 구조가 비슷합니다. 저녁 시간대 돌봄은 다시 어머니에게 쏠리고, 남는 여가는 아이가 잠든 뒤에야 조각으로 돌아옵니다. 그 조각난 시간은 온전한 휴식이라기보다 다음 날 준비를 위한 대기 시간에 가깝습니다. 제가 인터뷰에서 만난 한 워킹맘은 "쉬는 시간이 없는 건 아닌데,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대기 상태라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고 말했는데요. 이 문장이 여가시간 통계가 잡아내지 못하는 질의 문제를 정확히 가리킵니다.

여기서 핵심은 부부가 게으르거나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 사람 다 성실하게 하루를 꽉 채워 살지만, 돌봄이라는 고정 지출이 여성의 시간표에서 먼저 빠져나가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여가는 남은 것을 나눠 갖는 잔여 항목이 되고, 잔여가 적은 쪽이 만성적으로 여가를 박탈당합니다.

이런 장면은 특정 가정의 예외가 아닙니다. 돌봄 실태조사를 보면 맞벌이 가구에서 아동의 하루 돌봄을 채우는 순서는 어머니 11.69시간, 어린이집·유치원 같은 돌봄기관 7.76시간, 아버지 4.71시간, 조부모 3.87시간이었습니다. 기관이 낮 시간을 상당 부분 메워주는데도 어머니의 돌봄시간이 아버지의 2.5배에 달한다는 건, 기관이 닫히는 이른 아침과 저녁의 공백을 어머니가 홀로 떠안는다는 뜻입니다. 여가시간표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잘려나가는 구간이 바로 그 공백입니다.

여가시간은 느는데 왜 격차는 그대로인가

여가정책은 오랫동안 "시간을 늘려주면 여가가 늘어난다"는 전제 위에 설계돼 왔습니다. 근로시간 단축, 연차 확대, 유연근무 도입이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2024년 생활시간조사의 전체 여가시간은 5시간 8분으로 증가했고,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이용자도 2025년 34만 2,388명으로 전년보다 33.3% 늘었습니다. 총량 지표만 보면 상황은 개선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늘어난 시간이 가구 안에서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돌봄은 미룰 수 없는 고정 수요라서, 확보된 여유 시간이 있어도 그 시간이 돌봄 책임을 더 많이 진 쪽에게는 여가로 전환되지 못합니다.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따진 통계에서 여성 1인이 연간 창출한 가치는 1,646만 원으로 남성 605만 원의 약 2.7배였는데요. 이 격차가 바로 여가로 바뀌지 못한 시간의 크기입니다.

이 대목에서 여가를 다루는 관점이 갈립니다. 여가를 개인의 취향이나 소비 활동으로만 보면, 무엇을 하며 즐기느냐가 관심사가 됩니다. 하지만 여가복지의 시선은 다릅니다. 누가 여가에 접근조차 못 하는가, 그 배제가 어떤 구조에서 반복되는가를 묻습니다. 돌봄과 여가시간 배분 문제는 후자의 대표 사례입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 시간을 여가로 쓸 권한이 성별과 가족 내 역할에 따라 불평등하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본 돌봄과 여가시간의 배분

논의를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옮겨 보겠습니다. 여러 조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지표수치출처·시점
국민 1인 하루 여가시간5시간 8분2024 생활시간조사
맞벌이 부부 여가시간 격차(남편-아내)하루 30분2024 생활시간조사
맞벌이 어머니 하루 돌봄시간11.69시간돌봄 실태조사
맞벌이 아버지 하루 돌봄시간4.71시간돌봄 실태조사
미취학 자녀 맞벌이 여성 재량시간 빈곤율64.7%시간빈곤 분석
미취학 자녀 맞벌이 여성 여가·사회관계 빈곤율50.5%시간빈곤 분석
무급 가사노동 총가치582조 4,000억 원무급노동 가치평가

몇 가지 숫자를 풀어 보겠습니다. 맞벌이 어머니의 하루 돌봄시간 11.69시간은 아버지 4.71시간의 약 2.5배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임금노동을 하는 조건인데도 그렇습니다. 여기에 재량시간 빈곤율이 겹칩니다. 재량시간이란 필수시간과 의무시간을 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데요. 미취학 자녀를 둔 맞벌이 여성의 64.7%가 이 재량시간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빈곤의 겹침입니다. 남성은 수면 부족이 단독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은 재량시간과 여가시간이 동시에 부족한 중첩 빈곤 형태가 두드러졌습니다. 같은 가구, 같은 소득 조건이라도 시간을 빼앗기는 방식이 성별에 따라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미취학 가구원이 있는 가구는 없는 가구보다 가사노동시간이 하루 2시간 8분 더 많은데, 이 추가 부담이 어느 한쪽으로 쏠릴 때 여가 격차가 만들어집니다.

여가복지는 시간빈곤을 어떻게 다루나

한국여가복지연구원(Korea Leisure Welfare Institute, KLWI)이 여가를 바라보는 출발점은 "여가는 취향이 아니라 권리"라는 관점입니다. 여가권을 권리로 보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얼마나 즐거운 여가를 누리느냐가 아니라, 누구는 여가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먼저 따지게 됩니다. 돌봄으로 인한 시간빈곤은 이 진입 장벽의 대표 유형입니다.

여가복지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시간빈곤(time poverty)입니다. 소득이 일정 기준 아래면 소득빈곤이라 부르듯,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 일정 기준 아래로 떨어지면 시간빈곤으로 봅니다. 중요한 건 소득빈곤과 시간빈곤이 늘 함께 오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맞벌이로 소득은 중간 이상이어도, 돌봄 부담 탓에 시간빈곤에 빠진 가구가 적지 않습니다. 소득 기준 복지망은 이들을 잡아내지 못합니다. 여가복지가 소득만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자원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 관점은 정책 대상을 새로 그립니다. 기존 여가 지원은 저소득층, 고령자, 장애인처럼 소득이나 신체 조건으로 대상을 나눴습니다. 시간빈곤을 넣으면 여기에 '돌봄을 떠안은 사람'이라는 축이 추가됩니다. 워킹맘, 한부모, 노부모를 돌보는 중장년, 조부모 돌봄을 맡은 노년층이 모두 여가복지의 사각지대로 들어옵니다. 실제로 만혼과 출산 지연으로 손주 돌봄이 65세 이상 노년층에 전가되는 흐름이 확인되는데, 이는 은퇴 후 여가를 설계해야 할 세대의 시간이 다시 돌봄으로 흡수되는 사례입니다.

또 하나 짚을 지점은 여가의 질입니다. 돌봄을 진 사람의 여가는 시간의 길이만 짧은 게 아니라 밀도도 낮습니다. 아이가 잠든 뒤 확보한 한 시간과,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사람 없이 오롯이 자기 것인 한 시간은 회복 효과가 다릅니다. 앞서 워킹맘이 말한 '대기 상태'가 그 차이인데요. 생활시간조사의 여가시간 지표는 이 밀도 차이를 담지 못하기 때문에, 통계가 보여주는 30분 격차는 체감 격차의 최소치일 가능성이 큽니다. 여가복지가 시간의 총량과 함께 여가의 온전함을 지표로 다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달체계는 무엇을 바꿔야 하나

그렇다면 정책은 어디를 조여야 할까요. 여가시간 총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배분의 기울기가 펴지지 않으므로, 개입 지점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기존 접근한계배분 관점의 전환
근로시간 단축·연차 확대늘어난 시간이 돌봄으로 흡수됨돌봄 대체 서비스와 묶어 여가 전환을 보장
소득 기준 여가 바우처시간빈곤 가구를 못 잡음돌봄 부담 지표를 대상 선정에 반영
개인 단위 여가 프로그램돌봐야 할 대상이 있으면 참여 불가돌봄 동반형·시간대 배려형 프로그램 확대

첫째, 시간을 늘리는 정책과 돌봄을 덜어주는 정책을 반드시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아이돌봄서비스나 방과후 돌봄이 촘촘해질수록 확보된 여가시간이 실제 여가로 전환됩니다. 돌봄 공백을 남긴 채 시간만 늘리면 그 시간은 다시 돌봄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둘째, 여가 바우처와 지원 프로그램의 대상 선정에 소득뿐 아니라 돌봄 부담 지표를 넣어야 합니다. 미취학 자녀 유무, 돌봄 대상 가족원 수 같은 항목이 들어가면 시간빈곤 가구가 지원망 안으로 들어옵니다.

셋째, 프로그램 설계 자체를 돌봄 현실에 맞춰야 합니다. 돌봄 대상을 맡길 곳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생활체육·문화 프로그램도 그림의 떡입니다. 돌봄 동반형 운영이나 이른 아침·늦은 저녁을 피한 시간대 배치가 참여율을 실제로 바꿉니다. 남성 육아휴직 수급자가 2025년 6만 7,200명으로 전년보다 60.7% 늘어난 흐름은 배분을 바꾸는 제도가 실제로 행동을 움직인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가구와 기관이 오늘 할 수 있는 것

정책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구와 기관 차원에서 배분을 조정할 여지는 있습니다. 네 단계로 정리했습니다.

1단계, 시간 가계부를 써 봅니다. 일주일간 부부가 각자 돌봄·가사·여가에 쓴 시간을 대략 적어보면, 체감과 실제의 간극이 드러납니다. 대개 "나도 많이 한다"는 인식과 기록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2단계, 고정 돌봄을 먼저 나눕니다. 아침 등원, 저녁 목욕처럼 매일 반복되는 고정 돌봄부터 요일·시간대로 분담을 못박습니다. 남는 시간을 나누는 게 아니라 돌봄을 먼저 나누는 순서가 핵심입니다.

3단계, 여가를 일정으로 예약합니다. 각자에게 최소한의 온전한 여가 블록을 주간 일정에 못박아 둡니다. 잔여가 아니라 예약된 시간으로 만들어야 여가가 지켜집니다.

4단계, 지역 돌봄 자원을 확인합니다. 아이돌봄서비스, 가족센터, 생활체육 돌봄 동반 프로그램 등 거주 지역의 공적 자원을 미리 파악해두면, 돌봄 공백이 생겼을 때 여가를 통째로 반납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네 단계가 구조 문제를 완전히 풀어주진 못합니다. 다만 배분이라는 관점을 가구 안으로 들여오는 첫 걸음은 됩니다. 초보자도 시간 가계부 한 장이면 시작할수 있습니다.

FAQ

여가시간이 늘었다는데 왜 격차 이야기를 하나요? 총량과 배분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024년 국민 1인 여가시간은 5시간 8분으로 늘었지만, 맞벌이 가구 안에서 남편이 아내보다 하루 30분 더 여가를 누리는 격차는 그대로였습니다. 시간이 늘어도 돌봄 부담이 한쪽으로 쏠리면 그 시간은 여가로 전환되지 못합니다.
시간빈곤이 소득빈곤과 어떻게 다른가요? 소득빈곤은 돈이 부족한 상태, 시간빈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재량시간이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맞벌이로 소득은 중간 이상이어도 돌봄 탓에 시간빈곤에 빠지는 가구가 많은데요. 소득 기준 복지망은 이들을 놓치기 때문에 여가복지가 시간이라는 자원을 함께 봐야 합니다.
돌봄 부담은 여성만의 문제인가요? 아닙니다. 지금 데이터에서는 여성 쏠림이 두드러지지만, 노부모를 돌보는 중장년과 손주를 돌보는 노년층까지 넣으면 돌봄 시간빈곤은 성별과 세대를 가로지릅니다. 은퇴 후 여가를 설계해야 할 세대의 시간이 다시 돌봄으로 흡수되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가구 차원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요? 일주일치 시간 가계부를 써 보는 것입니다. 부부가 각자 돌봄·가사·여가에 쓴 시간을 적어보면 체감과 실제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다음 남는 시간을 나누는 대신, 매일 반복되는 고정 돌봄부터 요일·시간대로 분담을 정하는 순서가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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