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2 · 양세림 (선임연구원)

여가복지 해외 정책 사례는 무엇을 보여주나: 프랑스 파스 퀼튀르 150유로와 영국 사회적 처방 940만 건이 좁히는 여가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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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복지 해외 정책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결론부터 말하면 여가복지 해외 정책 사례가 주는 공통 교훈은 지원 금액이 아니라 전달 경로의 설계에 있습니다. 프랑스 파스 퀼튀르(pass Culture)는 18세 청년에게 주던 300유로를 2025년 개편에서 150유로로 줄이는 대신 저소득 가구 청년에게 50유로를 더 얹는 방향으로 돌아섰고, 독일 쿨투어파스(KulturPass)는 크레딧을 200유로에서 100유로로 반감하고도 약 33만 명의 청년을 서점과 공연장으로 불러냈습니다. 핀란드 카이쿠카드(Kaikukortti)는 소득 증빙 서류 없이 복지 창구에서 카드를 건네는 방식으로, 영국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은 2019~2023년 사이 940만 건의 진료 상담을 예술·운동 같은 여가 활동 연계로 이어가는 방식으로 여가 격차 해소에 접근합니다. 누가 여가를 못 누리는지 찾아내는 촘촘한 경로가 먼저 있어야 바우처든 프로그램이든 작동한다는 것, 이것이 네 나라가 보여주는 결론입니다.

목차

헬싱키 문화센터에서 본 여가복지의 다른 출발점

몇년 전 북유럽 여가복지 전달체계를 조사하러 헬싱키에 열흘 정도 머문 적이 있습니다. 시내 문화센터의 매표 창구 앞에서 한 중년 남성이 지갑에서 초록색 카드를 꺼내는 장면을 우연히 봤는데요. 직원은 카드를 스캔하더니 그날 저녁 콘서트 티켓을 그냥 건넸습니다. 돈이 오가지 않았고, 서류를 확인하는 절차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동행한 현지 연구자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카이쿠카드였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카드 자체가 아니라 카드가 그 사람 손에 들어간 경로였습니다. 그는 지역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던 중 담당 사회복지사에게서 카드를 받았다고 합니다. 본인이 신청서를 쓰고 소득 서류를 떼서 제출한 게 아니라, 그의 사정을 이미 알고 있는 복지기관 직원이 먼저 권한 것인데요. 창구에서 자신의 가난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 카드를 쓰는 일에 낙인이 붙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문화누리카드 발급 상담을 참관했던 기억과 자연스럽게 겹쳤습니다. 주민센터에서 수급 자격을 확인받고, 발급을 받고도 어디서 쓸 수 있는지 몰라 잔액을 남기는 사례를 여러 번 봤기 때문입니다. 같은 바우처라도 어떤 경로로 손에 쥐어지는지에 따라 체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경험을 출발점 삼아, 여가복지 해외 정책 사례 네 가지를 격차와 제도의 관점에서 하나씩 들여다 보면서 한국 여가복지 정책에 필요한 시사점을 정리합니다.

청년 문화바우처 실험: 프랑스 파스 퀼튀르와 독일 쿨투어파스

한 줄로 요약하면 유럽의 청년 문화바우처는 보편 지급으로 출발했다가 재정 압박 속에서 저소득층 가산이라는 선별 요소를 더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프랑스: 300유로 보편 지급에서 소득 연동 가산으로

파스 퀼튀르는 18세가 되는 모든 청년의 스마트폰 앱에 문화 크레딧을 넣어주는 제도입니다. 2021년 18세 전면 도입, 2022년 15~17세 확대를 거치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청년 문화바우처가 됬습니다. 공연, 도서, 미술관, 악기, 온라인 콘텐츠까지 폭넓게 쓸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그런데 프랑스 회계감사원은 첫 종합 평가 보고서에서 이 제도의 재정 구조를 재조정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보편 지급이 이미 문화를 소비하던 청년에게 더 유리하게 작동했고, 정작 문화 접근이 어려운 청년의 참여를 끌어올리는 효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2025년 3월 개편에서 18세 크레딧은 300유로에서 150유로로 줄었고, 대신 저소득 가구 청년에게 50유로를 추가로 얹는 소득 연동 가산이 도입됐습니다. 15~16세 개인 크레딧은 폐지됐습니다. 2025년 개인 지원분 예산은 1억 2,750만 유로 수준으로 조정됐고, 학교 단체 활동 지원분 7,200만 유로는 별도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여가 격차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개편은 의미가 큽니다.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주는 방식이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는 것을 대규모 실험으로 확인하고, 못 누리는 쪽에 더 주는 구조로 손질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예산 반감에도 남은 이용 데이터의 가치

독일 쿨투어파스는 2023년 6월 시작됐습니다. 18세가 되는 해에 앱으로 등록하면 크레딧을 받는 구조로, 첫해 대상자였던 2005년생에게는 200유로가 지급됐는데요. 연방 예산 협상 과정에서 2024년부터 크레딧이 100유로로 반토막 났습니다.

그래도 이용 실적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2005년생 28만 5,445명, 2006년생 21만 1,000여 명이 등록해 2025년 2월까지 약 280만 건, 금액으로 5,350만 유로어치의 문화 소비가 이 앱을 거쳐 이뤄졌습니다. 책 약 85만 권, 영화 관람 약 48만 건, 공연·콘서트 약 16만 건이라는 품목별 데이터도 남았습니다. 청년들이 크레딧을 어디에 쓰는지가 그대로 기록되니, 다음 정책을 설계할수 있는 근거가 축적되는 셈입니다.

구분프랑스 파스 퀼튀르독일 쿨투어파스
도입 시점2019년 시범, 2021년 전면화2023년 6월
대상17~18세 (개편 후)18세가 되는 청년
크레딧 변화18세 300유로 → 150유로 + 저소득 50유로 가산200유로 → 100유로
최근 개편 방향보편 축소·선별 가산 도입총액 축소·제도 유지
특징학교 단체 활동 지원분 병행품목별 이용 데이터 축적

관계 기반 전달체계: 핀란드 카이쿠카드와 영국 사회적 처방

핵심은 돈을 직접 주는 대신 사람과 경로를 설계한다는 점입니다. 두 나라는 여가를 못 누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복지·의료 현장의 관계망으로 찾아냅니다.

핀란드: 소득 증빙 없는 카드 한 장

카이쿠카드는 핀란드의 '모두를 위한 문화 서비스(Culture for All Service)'가 개발한 제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축제·콘서트·연극 티켓이나 시민학교 강좌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개인 카드입니다. 핵심 설계는 발급 경로에 있습니다. 공식 안내에 따르면 카드는 카이쿠카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회복지·보건 기관의 창구에서 그 기관의 클라이언트에게 직접 발급되고, 소득을 증명하는 서류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 구조의 장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신청 장벽이 낮습니다. 서류를 준비할 여력조차 없는 사람일수록 복지 창구와의 접점은 이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둘째, 낙인이 적습니다. 공연장 매표소에서는 카드만 제시하면 되니 자신의 소득 수준을 드러낼 필요가 없습니다. 에스포, 탐페레, 오울루 등 여러 지자체가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고, 한 지역에서 발급받은 카드를 다른 참여 지역에서도 쓸 수 있도록 전국 확산을 목표로 운영됩니다.

영국: 의사가 처방하는 여가

영국의 사회적 처방은 동네 의원을 여가복지의 입구로 만든 제도입니다. NHS 잉글랜드의 설명에 따르면 의사나 보건 인력이 환자를 링크워커(link worker)라는 연계 전문 인력에게 보내고, 링크워커는 환자와 상담해 예술 활동, 생활체육, 자연 활동, 자원봉사 같은 비임상 활동으로 연결합니다. 외로움이나 가벼운 우울감으로 진료실을 찾는 사람에게 약 대신 합창단이나 걷기 모임을 처방하는 셈입니다.

규모도 상당합니다. 현재 3,300명이 넘는 링크워커가 활동 중이고, NHS 인력계획은 2036~37년까지 이 인력을 9,000명으로 늘리겠다고 명시했습니다. UCL 연구진의 분석으로는 2019~2023년 사이 사회적 처방이 논의된 일반의 진료 상담이 940만 건에 달해, 5년간 90만 명 연계라는 당초 목표를 크게 넘어섰습니다. 사회적 고립과 여가 참여가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을 제도 설계에 그대로 반영한 사례라고 할수 있습니다.

네 나라 비교: 여가 격차는 돈보다 경로에서 갈린다

네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여가복지 정책의 두 축이 보입니다. 하나는 구매력을 보태주는 바우처 축이고, 다른 하나는 참여로 이끄는 관계 축입니다.

나라제도방식대상을 찾는 경로
프랑스파스 퀼튀르문화 크레딧 (앱)연령 기준 보편 + 소득 가산
독일쿨투어파스문화 크레딧 (앱)연령 기준 보편
핀란드카이쿠카드무료 이용 카드복지·보건 기관의 관계망
영국사회적 처방활동 연계 (링크워커)동네 의원 진료실

프랑스와 독일의 경험은 바우처 축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금액을 넉넉히 줘도 원래 문화를 즐기던 계층이 더 잘 쓰는 경향이 나타났고, 결국 두 나라 모두 총액을 줄였습니다. 반면 핀란드와 영국은 처음부터 다른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얼마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못 누리는 사람을 누가 어디서 만나 어떻게 데려올 것인가라는 질문인데요.

한국의 상황에 대입하면 이 대비는 더 선명해집니다. 국민여가활동조사 기준 저소득층의 월평균 여가비용은 12만 원으로 고소득층 23만 원의 절반 수준이고,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한 문화누리카드는 2026년 연 15만 원까지 올라왔습니다. 금액 인상은 분명 필요한 방향이지만, 해외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발급받고도 쓰지 못하는 사람, 제도 자체를 모르는 사람, 함께 갈 사람이 없어 포기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경로가 없으면 바우처 금액을 올려도 여가 격차는 그대로 남습니다. 문화누리카드의 전달체계 병목은 문화누리카드 15만 원은 저소득층 여가 격차를 얼마나 좁히나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한국 여가복지에 적용하는 4단계 실전 가이드

해외 사례를 한국 지역 현장에 옮겨볼 때 참고할 만한 순서를 정리했습니다. 지자체 담당자나 복지기관 실무자가 바로 검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눴습니다.

1단계, 기존 접점 목록화입니다. 카이쿠카드의 출발점은 새 창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복지·보건 창구를 문화의 입구로 겸용한 것입니다. 지역 내 정신건강복지센터, 노인복지관, 자활기관처럼 취약계층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기관을 먼저 목록으로 만듭니다.

2단계, 연계 인력 지정입니다. 영국의 링크워커처럼 상담과 동행을 맡을 사람을 정합니다. 새 채용이 어렵다면 기존 사회복지사에게 지역 여가 자원 정보를 정리해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3단계, 낙인 없는 이용 설계입니다. 이용 현장에서 소득이나 수급 여부가 드러나지 않도록 결제·입장 방식을 손봅니다. 핀란드처럼 카드 한 장, 또는 일반 카드와 구분되지 않는 디자인이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4단계, 이용 데이터 환류입니다. 독일이 품목별 이용 기록을 정책 근거로 쌓았듯, 누가 어떤 프로그램을 얼마나 이용했는지 분기 단위로 확인해 예산 배분에 반영합니다. 신청률이 아니라 실제 이용률을 지표로 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네 단계에서 일관되게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금액 책정은 마지막이고, 경로 설계가 먼저입니다.

FAQ

해외 여가복지 제도를 한국에 그대로 도입할 수 있나요? 그대로 이식하기는 어렵습니다. 영국 사회적 처방은 주치의 제도라는 기반 위에서 작동하고, 핀란드 카이쿠카드는 지자체 복지 서비스의 촘촘한 관계망을 전제로 합니다. 다만 발급 경로 단순화, 낙인 없는 이용 설계, 연계 인력 지정 같은 설계 원리는 제도 기반이 달라도 부분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문화바우처와 사회적 처방은 무엇이 다른가요? 문화바우처는 구매력을 보태주는 현금성 지원이고, 사회적 처방은 사람을 활동으로 연결하는 서비스입니다. 바우처는 쓸 의지와 정보가 있는 사람에게 효과적이지만,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연계와 동행이 먼저 필요합니다. 두 방식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입니다.
프랑스는 왜 파스 퀼튀르 금액을 줄였나요? 회계감사원 평가에서 보편 지급이 이미 문화를 소비하던 청년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문화 접근이 어려운 청년의 참여 확대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2025년 개편은 18세 크레딧을 150유로로 줄이는 대신 저소득 가구 청년에게 50유로를 가산해, 총액 절감과 격차 보정을 동시에 노린 조정입니다.
한국 문화누리카드와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자격 확인 방식과 발급 경로입니다. 문화누리카드는 수급 자격을 본인이 확인받아 신청하는 구조인 반면, 핀란드 카이쿠카드는 복지기관이 자기 클라이언트에게 소득 증빙 없이 직접 건네는 구조입니다. 지원 금액 면에서는 문화누리카드 연 15만 원이 유럽 바우처와 비교해 크게 뒤지지 않지만, 대상자를 찾아가는 경로의 밀도에서 차이가 큽니다.
사회적 처방의 효과는 검증되어 있나요? 영국에서는 2019\~2023년 사이 관련 진료 상담이 940만 건 누적될 만큼 제도가 빠르게 확산했고, 국립사회적처방학술원(NASP)이 예술·신체활동·자연 분야별 근거 리뷰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의료비 절감 효과의 크기는 연구마다 편차가 있어 추가 검증이 진행 중이지만, 외로움 완화와 삶의 질 개선에 대해서는 긍정적 근거가 쌓이는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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