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여가시설은 왜 지어놓고도 적자에 시달릴까?
결론부터 말하면 공공 여가시설 운영의 성패는 건립 예산이 아니라 개관 이후의 운영 방식에서 갈립니다. 2026년 세계일보가 전국 11개 시도 57개 시·군·구의 공공시설 242곳을 조사한 결과 흑자를 낸 곳은 19곳, 비율로는 7.9%에 그쳤습니다. 반면 20년 넘게 만성 적자였던 고양종합운동장은 대형 공연 유치라는 운영 전환만으로 연간 이용객을 1만여 명에서 69만 명으로 늘리고 74억 원 흑자로 돌아섰는데요. 시설을 몇 개 지었는지가 아니라 지어진 시설을 누가 어떻게 채우는지가 주민의 여가권을 좌우한다는 것이 한국여가복지연구원(Korea Leisure Welfare Institute)의 진단입니다.
목차
- 평일 오후 2시, 비어 있는 다목적홀에서 본 것
- 흑자 시설 7.9%: 공공 여가시설 적자의 구조
- 시설은 3,356개인데 왜 여가는 매체 앞에 머무나
- 고양·인제·삼척: 운영을 바꾸자 달라진 것들
- 적자 대신 무엇을 볼 것인가: 운영 평가의 세 가지 지표
- 주민과 지자체를 위한 공공 여가시설 활용 4단계
- FAQ
- 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평일 오후 2시, 비어 있는 다목적홀에서 본 것
지난 3월 연구원 현장 조사차 경기 북부의 한 국민체육센터를 평일 오후에 방문했습니다. 지어진지 12년 된 이 센터의 수영장은 오전 강습이 끝난 뒤라 레인 여섯 개 중 두 개만 자유수영으로 열려 있었고, 2층 다목적홀은 오후 4시 어린이 프로그램 전까지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홀 대관은 주말에 몰리고 평일 낮은 "신청이 거의 없다"는 답이 돌아왔는데요. 같은 시간 로비에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소파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 네 분이 계셨습니다.
흥미로운 장면은 그다음이었습니다. 분기별 프로그램 접수일 아침에는 이 센터 홈페이지가 접속 폭주로 마비된다고 합니다. 인기 강좌인 성인 수영 초급반은 3분 만에 마감되는데, 정작 시설의 평일 낮 가동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입니다. 수요가 없는 게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시간표가 어긋나 있는 셈인데요. 이 어긋남을 조정하는 일, 즉 프로그램 편성과 개방 시간 설계가 바로 공공 여가시설 운영의 본질입니다. 건물은 이미 충분히 지어져 있었습니다.
흑자 시설 7.9%: 공공 여가시설 적자의 구조
공공 여가시설의 적자는 특정 지자체의 방만 운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현상입니다. 세계일보 심층기획이 확인한 대로 조사 대상 공공시설 242곳 가운데 흑자 시설은 19곳, 7.9%뿐이었습니다. 열에 아홉은 세금으로 운영비를 메우고 있다는 뜻인데요. 인건비와 유지·보수비 같은 고정비는 해마다 오르는데 이용료는 공공요금 성격이라 올리기 어렵고, 세입 여건이 나빠진 지자체는 프로그램 예산부터 줄이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자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는 관점입니다. 공공 여가시설은 애초에 수익을 내려고 짓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공급하지 않는 여가 기회를 보장하려고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적자의 크기가 아니라 적자를 감수하고도 시설이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운영비 대비 이용자 수, 프로그램 정원 대비 대기자 수 같은 지표를 보지 않고 수지 균형만 따지면, 지자체는 개방 시간을 줄이고 이용료를 올리는 손쉬운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그 비용은 결국 민간 시설을 이용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고령층에게 전가됩니다. 여가복지 관점에서 공공 여가시설 운영을 평가할 때 "얼마나 덜 잃었나"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이용했나"가 중요한 기준이 됨니다.
운영 주체를 둘러싼 논쟁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직영은 공공성이 높지만 프로그램 기획이 경직되기 쉽고, 민간 위탁은 효율적이지만 수익성 낮은 취약계층 프로그램이 먼저 잘려 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학계에서도 국민체육센터 위탁운영의 관리·감독 공백이 반복해서 지적돼 왔는데요. 어느 쪽이든 계약서에 취약계층 이용 목표와 개방 시간 기준을 명시하지 않으면 결과는 비슷해집니다.
시설은 3,356개인데 왜 여가는 매체 앞에 머무나
공급 통계만 보면 한국의 여가 인프라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 기준 전국 문화기반시설은 3,356개로, 공공도서관 1,271개, 박물관 930개, 미술관 296개에 이릅니다. 공공체육시설도 문체부가 매년 현황을 집계할 만큼 양적으로는 성장했는데요. 그런데 국민의 여가 생활은 시설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2024 국민여가활동조사의 주요 지표를 보겠습니다.
| 지표 | 2024년 | 비고 |
|---|---|---|
| 평일 하루 평균 여가시간 | 3.7시간 | 전년 3.6시간 |
| 휴일 하루 평균 여가시간 | 5.7시간 | 전년 5.5시간 |
| 월평균 여가비용 | 18만 7,000원 | 전년보다 1만 4,000원 감소 |
| 여가생활 만족도 | 61.6% | 2016년 이후 최고 |
| 혼자 하는 여가 비율 | 54.9% | 가족·친구 동반보다 높음 |
여가시간은 늘고 만족도도 8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TV와 온라인·모바일 동영상 시청 같은 매체 이용 활동이 증가를 이끌었고 문화예술 관람·스포츠·관광 같은 직접 참여 활동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여가비용이 한 해 사이 1만 4,000원 줄어든 것도 같은 신호인데요. 지갑이 얇아진 국민이 돈 드는 바깥 여가 대신 집 안의 화면으로 여가를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공공 여가시설 운영의 존재 이유입니다. 무료이거나 저렴한 공공시설이 제대로 열려 있고 프로그램이 매력적이라면, 비용 때문에 집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직접 참여형 여가로 가는 다리가 될수 있습니다. 시설 3,356개라는 공급 숫자와 혼자 화면 앞 여가 54.9%라는 이용 행태 사이의 간극이야말로, 건립이 아니라 운영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고양·인제·삼척: 운영을 바꾸자 달라진 것들
운영 전환으로 성과를 낸 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뚜렷합니다. 건물을 새로 짓지 않고 쓰임새를 다시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 시설 | 운영 전환 내용 | 성과 |
|---|---|---|
| 고양종합운동장 | 체육 경기 중심에서 대형 공연 유치로 복합 활용 | 이용객 1만 1,247명(2020) → 69만 명(2025), 수익 106억 원·흑자 74억 원 |
| 인제하늘내린센터 | 공연장·영화관 기능을 더한 복합 문화시설 운영 | 2024년 수익 53억 원, 운영비 39억 원 제외 13억 원 흑자 |
| 삼척해상케이블카 | 관광 수요와 연계한 운영 효율화 | 연 관광객 17~18만 명, 4억 100만 원 흑자 |
고양종합운동장은 2003년 개장 이후 체육 경기 전용으로 쓰이며 만성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2024년 하반기부터 대형 공연을 26회 유치하면서 관람객 85만 명이 들어왔고, 2020년 4억 3,600만 원이던 운영 수익은 2025년 106억 원으로 뛰었는데요. 주민등록인구 3만 2,000명인 강원 인제군의 하늘내린센터가 연간 이용자 12만 명을 받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군민만 바라보지 않고 공연·영화 수요를 흡수해 시설의 쓰임을 넓힌 결과입니다.
물론 이 사례들을 수익 모델로만 읽으면 곤란합니다. 공연 대관이 늘어 주민 생활체육 시간이 밀려난다면 여가복지 관점에서는 후퇴일 수 있는데요. 핵심은 흑자 그 자체가 아니라, 비어 있던 시간대를 새로운 이용자로 채웠다는 사실입니다. 늘어난 수익이 주민 프로그램 확충과 이용료 인하로 되돌아오는 순환 구조를 만들 때, 흑자 전환은 비로소 여가복지의 성과가 됩니다.
적자 대신 무엇을 볼 것인가: 운영 평가의 세 가지 지표
한 줄로 요약하면, 공공 여가시설 운영 평가의 축을 수지에서 이용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공공시설 운영현황 공시는 수입과 지출, 그러니까 얼마나 벌고 얼마나 썼는지를 중심으로 짜여 있는데요. 이 틀에서는 개방 시간을 줄이고 인력을 감축한 시설이 오히려 좋은 성적표를 받는 역설이 생깁니다. 여가복지 관점에서는 다음 세 가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 시간대별 가동률: 하루 평균이 아니라 평일 낮·야간·주말로 쪼갠 가동률입니다. 평균 가동률 60%라는 숫자 뒤에 평일 낮 20%와 주말 95%가 숨어 있으면 처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이용자 구성: 전체 이용자 수보다 취약계층·고령층·청소년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감면 대상 이용 비율이 낮다면 요금이 아니라 정보 전달이나 접근 경로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인데요.
- 운영비 대비 이용 성과: 이용자 1인당 투입 예산을 시설 간 비교하면, 같은 적자라도 복지 성과가 큰 적자와 그냥 비어 있는 적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지표들은 대단한 시스템 없이도 산출이 가능합니다. 예약 시스템 데이터와 감면 신청 기록만 결합해도 시간대별 가동률과 이용자 구성이 나오는데요.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관행입니다. 지자체 의회와 주민이 결산 심사에서 적자 폭만 묻는 한, 담당 부서도 그 숫자만 관리하게 됩니다. 질문이 바뀌어야 운영이 바뀝니다.
주민과 지자체를 위한 공공 여가시설 활용 4단계
공공 여가시설 운영 개선은 담당 공무원만의 일이 아닙니다. 주민 입장에서도 시설을 제대로 이용하고 운영에 목소리를 내는 경로가 있는데요. 처음이라면 다음 순서를 권합니다.
1단계, 우리 동네 시설 목록부터 확인합니다. 지자체 홈페이지의 공공시설 예약 메뉴나 통합 예약 포털에서 체육센터·문예회관·생활문화센터의 프로그램과 이용료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문화기반시설 3,356개 시대에 정작 자기 동네 시설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2단계, 감면 제도를 챙깁니다.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장애인·국가유공자는 대부분의 공공체육시설에서 이용료 감면을 받을수 있고, 스포츠강좌이용권이나 문화누리카드와 결합하면 부담이 더 줄어듭니다.
3단계, 비수기 시간대를 노립니다. 인기 강좌가 3분 만에 마감되는 시설도 평일 낮 자유 이용은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재택근무자나 교대근무자라면 평일 낮이 오히려 기회입니다.
4단계, 운영에 참여합니다. 시설 이용자 만족도 조사, 주민참여예산, 프로그램 수요 조사에 응답하는 것만으로도 편성이 바뀝니다. 몇달째 비어 있는 시간대나 필요한 강좌를 구체적으로 적어 내는 주민 의견이 쌓일 때, 위탁 계약서의 다음 조건이 달라집니다.
FAQ
공공 여가시설이 적자면 무조건 잘못 운영되고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공공 여가시설은 시장이 공급하지 않는 여가 기회를 보장하는 복지 인프라라서 일정 수준의 재정 투입은 전제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적자의 크기보다 세금을 쓰면서도 시설이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운영비 대비 이용자 수, 취약계층 이용 비율 같은 지표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합니다.직영과 민간 위탁 중 어느 쪽이 더 나은가요?
일률적인 정답은 없습니다. 직영은 공공성 확보에, 위탁은 프로그램 기획과 비용 효율에 강점이 있는데요. 어느 방식이든 계약과 평가에 취약계층 이용 목표, 개방 시간 기준, 이용료 상한을 명시하는지가 실제 결과를 좌우합니다. 위탁운영의 관리·감독 공백은 학계에서도 반복 지적되어 온 사안입니다.이용료를 올리면 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나요?
단기적으로 수지는 개선될 수 있지만, 가격에 민감한 저소득층·고령층부터 이탈해 시설 가동률이 함께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4년 국민 월평균 여가비용이 18만 7,000원으로 전년보다 1만 4,000원 줄어든 상황에서 이용료 인상은 여가 격차를 키우는 방향입니다. 고양종합운동장처럼 비어 있는 시간대에 새 수요를 채우는 쪽이 지속 가능합니다.일반 주민이 시설 운영 개선을 요구할 방법이 있나요?
있습니다. 시설별 만족도 조사와 수요 조사, 지자체 주민참여예산 제안, 정보공개청구를 통한 운영 현황 확인이 대표적인데요. 특히 원하는 프로그램과 시간대를 구체적으로 적은 의견은 다음 분기 편성과 위탁 평가에 실제로 반영됩니다.흑자 전환 사례를 다른 지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나요?
조건이 다르면 결과도 다릅니다. 고양은 수도권 공연 수요, 삼척은 관광 수요라는 배후 시장이 있었습니다. 인구가 적은 지역이라면 흑자보다는 인제하늘내린센터처럼 복합 활용으로 주민 1인당 이용 횟수를 늘리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인데요. 벤치마킹할 것은 수익 모델이 아니라 비는 시간을 찾아 쓰임새를 재설계하는 접근 방식입니다.같이 읽으면 좋은 것들
출처
- 공연·수영장으로 변신… "지자체 수익효자 됐어요" [심층기획-'혈세 먹는 하마' 지역 공공시설](NewsArticle)
- 취미도 온라인으로...여가활동 만족도 8년만 최고(NewsArticle)
- 2024 국민여가활동조사 (문화체육관광부)(GovernmentService)
- 2025년 전국 공공체육시설 현황(2024.12.31.기준) (문화체육관광부)(GovernmentService)
- 2025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 (문화체육관광부)(GovernmentService)